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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한문

이생규장전 전문 (후편) 교과서 실린 내용

by 학이시습지불역열호 2022. 7. 6.

신축년(辛丑年)에 홍적(紅賊)이 서울을 침략하여 임금은 복주(福州)로 피신하였다. 도적들은 집을 불태우고 사람과 가축을 죽이고 잡아먹으니, 부부와 친척들은 서로를 지키지 못하고 이리저리 도망가 각자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서생은 가족들을 데리고 깊은 산중에 숨어 있었는데, 한 무리의 도적이 칼을 빼들고 쫓아왔다. 이 서생은 겨우 달아날 수 있었지만, 그 아내는 도적들의 포로가 되었다. 도적들은 그녀를 겁탈하려 하였지만 그녀는 크게 꾸짖기를,

호랑이에게 잡혀먹은 귀신 같은 놈들아! 나를 죽여 씹어먹어라. 차라리 이리 뱃속에 들어갈지언정 개돼지 같은 놈의 짝이 될까 보냐!”

도적은 노하여 그녀를 죽이고 살을 발라내어 황야에 흩뿌렸다.

 

이 서생은 간신히 몸을 보전하여 도적들이 이미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부모가 살던 옛집으로 돌아갔지만 집은 전란통에 이미 불탄 후였다. 여인의 집으로 찾아가니 행랑은 황량한데 찍찍거리는 쥐, 울어대는 새소리만이 요란했다. 이 서생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작은 누각에 올라 눈물을 참으며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날은 저물어 가는데 쓸쓸히 홀로 앉아 옛날 즐겁게 놀던 일들을 생각하니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인 것만 같았다.

 

이경(二更)이 되자 어슴푸레한 달빛이 깔리니 그 빛은 누각 안의 대들보를 비췄다. 어디선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곁에까지 다가오니 바로 최씨 여인이었다. 서생은 그녀가 이미 죽었음을 알고 있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절실해 의심하지 않고 물었다.

 

어디서 난리를 피하여 온전히 목숨을 보전했소?”

여인은 이 서생의 손을 잡고 구슬피 울더니 사정을 이야기했다.

첩이 본디 양가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는 어버이의 가르침을 받들어 자수(刺繡)와 재봉(裁縫)에 힘쓰고, 시서(詩書)와 인의의 도리를 배웠으니, 다만 규중의 법도만 알고 있을 뿐 어찌 바깥 세상의 돌아가는 것을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서방님께서 우연히 붉은 살구꽃이 핀 담장 안을 엿보신 후 저는 스스로 서방님께 몸을 의탁하였고, 꽃 앞에서 한 번 웃자 평생의 인연을 맺었으며, 휘장 안에서 다시 만났을 땐 그 사랑이 백 년을 넘쳐 흘렀습니다. 아아, 이렇게 말씀드리려니 슬픔과 부끄러움을 견딜 수가 없군요. 장차 고향집에서 만나 백년을 해로할 생각이었지만, 어찌 그 뜻이 꺾여 도랑으로 곤두박질할 줄 알았겠습니까. 끝까지 이리 같은 놈들에게 몸을 더럽히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진창 속에서 육신이 찢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타고난 천성 때문이지만 인정으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궁벽한 산골에서 서방님과 한 번 이별한 것이 한이 되어 짝 잃은 외기러기 같은 신세가 되었습니다. 집안이 망하고 가족들이 죽었으니 피곤한 혼백은 의지할 곳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의리는 중하고 목숨은 가벼운 법, 쇠잔한 몸뚱어리로 치욕을 모면한 것은 다행이오나 조각조각난 소첩의 마음을 누가 가련히 여겨 주겠습니까. 다만 애끊는 썩은 창자에만 맺혀 있을 뿐입니다. 뼛가루는 황야에 널려지고 간담은 땅에 버려졌으니, 생각해보니 옛날의 즐거움은 오늘의 슬픔을 위한 것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이제 깊은 골짜기에 바람이 불어와, 소첩도 청녀와 같이 다시 밝은 세상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방님과 소첩은 봉래일기지약(蓬萊一紀之約)으로 맺어진 몸, 취굴(聚窟)에 약속한 삼생(三生)의 향기는 존엄한 것입니다. 오랫동안 뵙지 못했던 한을 오늘에야 풀어 전날 맹세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니, 만일 소첩을 잊지 않으셨다면 끝까지 즐거움을 누릴까 합니다. 서방님께서는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이 서생은 한편으로 기쁘고 한편으로는 감동하여 말하기를,

내 소원과도 같소.”

하고는 함께 즐거운 심정을 나누었다. 이야기가 도적들에게 노략질당한 가산에 이르자 여인이 말하기를,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산 어떤 골짜기에 묻어두었습니다.”

우리 두 집의 부모님들의 유골은 어디에 있소?”

여인이 대답하기를,

어느 곳에 버려져 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고 잠자리를 함께하니 그 극진한 즐거움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다.

 

다음날 여인은 서생과 함께 옛날 살던 곳을 찾아가니, 과연 몇덩이의 금과 은, 그리고 약간의 재물을 찾을 수 있었다. 또한 양가 부모들의 유골도 수습할 수 있었다. 금과 재물을 팔아 오관산(五冠山) 기슭에 각각 합장해 드리고 나무를 심고 제사를 올려 모든 장례의 예를 갖출 수 있었다.

그후 이 서생은 관직을 구하려 하지 않고 최씨 여인과 더불어 함께 살았다. 뿔뿔이 도망갔던 노복들도 다시 돌아왔다. 이 서생은 이후 세속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꺼리며 비록 친척과 손님들이 찾아와도 문을 닫고 나가지 않은 채, 언제나 최씨 여인과 더불어 때로는 술잔을 나누고 때로는 시구를 주고받으며 금슬좋게 살았다.

 

어느덧 몇 년이 지났다. 어느 날 저녁 여인이 이 서생에게 말하였다.

세 번이나 가약을 맺었지만, 세상일이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즐거움을 다하기도 전인데 슬픈 이별이 닥쳤습니다.”

그리고 슬피 우는 것이었다. 이 서생은 놀라며 물었다.

어떤 이유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여인이 대답하기를,

저승의 율법은 피할 수 없습니다. 천제(天帝)께서 첩으로 하여금 서방님을 모시게 한 까닭은, 연분이 아직 끊어지지 않았고 또한 지은 죄가 없는 탓입니다. 그래서 이 몸을 환생시켜 서방님의 근심을 잠시나마 덜어드리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 세상에 머물 수 없는 것은 혹시 멀쩡한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시녀에게 명하여 술상을 마련하게 하고 옥루춘(玉樓春)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며 서생에게 술을 권했다.

 

도적들 밀려온 어지러운 싸움터,

꽃은 찢기도 원앙은 짝 잃었네.

흩어진 백골 누가 묻어줄까.

피투성이 떠도는 혼백 말할 곳 없구나.

고당에 한번 내려온 무산의 선녀는

깨진 거울 다시 나뉘니 마음은 쓰라리네.

이제 이별하면 두 사람 모두 아득히 떨어져

저승과 이승 사이 소식조차 모르겠지.”

 

가락마다 몇 번씩이나 눈물을 삼키느라고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이 서생 또한 슬픔을 이길 수 없었다.

차라리 부인과 함께 구천(九泉)으로 들어가겠소. 어찌 쓸쓸히 남은 인생을 살겠소. 지난번 난리를 겪고 난 후 친척과 노복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잃어버린 부모님의 유골이 들판에 널렸을 때에도 부인이 없었다면 누가 능히 수습하여 장례를 치를 수 있었겠소. 옛 성현께서 말씀하시기를 살아 생전에 예절로써 모시고 죽은 후에도 예절로써 장례를 치러야 한다고 하였소. 이런 일을 모두 부인께서 다하셨으니, 이것은 부인의 천성이 순효(純孝)하고 인정이 독후(篤厚)하기 때문이오. 나는 이미 감격하여 스스로 부끄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있소. 원하건대 사람의 세상에 오래 머물다가 백 년이 지난 후 함께 죽는 것이 어떻겠소?”

여인이 말하기를,

서방님의 수명은 아직 남아 있지만 첩은 이미 귀신의 명부에 오른 몸이라 오래 있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사람 세상에 미련을 둔다면 그것은 하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 죄는 오직 제 한 몸뿐만 아니라 서방님에게까지 누가 미칠 것입니다. 단지 저의 유골이 어느 곳에 흩어져 있으니, 만약 은혜를 베풀어주신다면 비바람이나 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서방님 귀체를 보중하십시오.”

말을 마치자 점차 사라져 마침내 자취가 없어졌다. 이 서생은 여인의 유골을 거두고 부모의 무덤 곁에 장사를 치러 주었다.

장사가 끝난 후 이 서생은 부인에 대한 지극한 애정 때문에 병을 얻어 몇 개월 만에 죽게 되니,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 중 슬퍼하고 탄식하지 않는 사람이 없으며 그 신의를 추모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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