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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한문

2023학년도 국어영역 EBS 수능특강 지문 최척전(崔陟傳) 전문(中)

by 학이시습지불역열호 2022. 7. 14.

정유년 8월에 왜구가 남원을 함락하자 사람들이 모두 피난 가 숨었으며, 최척의 가족들도 지리산 연곡사로 피난을 갔다. 최척은 옥영에게 남장을 하게 했는데, 뭇 사람에 뒤섞이어도 보는 사람들마다 옥영이 여자인 줄을 몰랐다. 지리산으로 들어온 지 며칠이 지나자 양식이 다 떨어져 거의 굶주리게 되었다. 최척은 장정 서너 사람과 함께 양식도 구하고 왜적의 형세도 살펴볼 겸 산에서 내려왔다. 최척 일행은 구례에 이르러서 갑자기 적병을 만나게 되었는데, 모두 바위 골짜기에 몸을 숨겨 겨우 붙잡히는 것을 면했다.

이날 왜적들은 연곡사로 가득히 쳐들어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다 약탈해 갔다. 최척 일행은 길이 막혀 3일 동안이나 오도가도 못하고 숨어 있었다. 왜적들이 물러가기를 기다렸다가 간신히 연곡사로 들어가 보니, 시체가 절에 가득히 쌓여 있고 피가 흘러 내를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숲 속에서 신음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최척이 달려가 보니, 노인 몇 사람이 온 몸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었다. 노인들은 최척을 보자 통곡하며 말했다.

적병이 산에 들어와서 3일 동안 재물을 약탈하고 인민들을 베어 죽였으며, 아이들과 여자들은 모두 끌고 어제 겨우 섬진강으로 물러갔네. 자네 가족들을 찾고 싶으면 물가에 가서 물어 보게나.”

최척은 하늘을 부르짖으며 통곡하고 땅을 치며 피를 토한 뒤, 즉시 섬진강으로 달려갔다. 몇 리도 채 못 갔는데, 문득 어지럽게 널려진 시신들 속에서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끊겼다 이어졌다 해서 소리가 나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가서 보니 온 몸이 칼로 베이고 흐르는 피가 얼굴에 낭자하여 어떤 사람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그가 입고 있는 옷을 살펴보니 춘생이 입고 있던 것과 비슷했다. 그래서 최척은 큰 소리로 불러 말했다.

너는 춘생이 아니냐?”

춘생이 눈을 들어보더니, 얼굴이 비참하게 일그러지며 기어드는 목소리로 희미하게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낭군이시여, 낭군이시여! 아아, 애통합니다! 주인 어른의 가족들은 모두 적병에게 끌려갔으며, 저는 어린 몽석을 등에 업고 달아났으나 빨리 달릴 수가 없어 적병의 칼에 맞게 되었습니다. 그 즉시 저는 땅에 넘어져 기절했다가 반나절만에 깨어났는데, 등에 업혔던 아이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춘생은 말을 마치더니 이내 죽고 말았다. 최척은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땅에 쓰러져 기절했다가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 이윽고 정신을 가다듬어 섬진강으로 가서 보니, 강둑 위에 상처를 입고 쓰러진 수십 명의 노약자들이 서로 모여서 통곡을 하고 있었다. 최척이 다가가서 묻자, 노인들이 대답했다.

산 속에 숨어 있다가 왜적에게 여기까지 끌려 왔네. 왜적들은 여기에서 장정들만 가려 배에 실어 가고, 이처럼 병이 들거나 칼에 찔린 노약자들은 버려 두었네.”

최척은 이 이야기를 듣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혼자만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하려고 했으나, 주위 사람들이 만류하여 죽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강의 상류로 터덜터덜 걸어올라 갔는데, 막상 돌아갈 곳도 없었다. 샛길을 찾아 겨우 고향에 이르러서보니, 담벼락은 무너지거나 깨어져 있었다. 그 밖의 다른 것들도 모두 불타버려 쉴 곳은 물론, 곳곳에 시체가 언덕처럼 쌓여 발 디딜 틈도 없었다.

마침내 최척이 금교 옆에 주저앉아 쉬고 있는데, 문득 어떤 당나라 장수가 10여 명의 말 탄 병사를 거느리고 성안에서 나와 금교 아래에서 말을 씻기었다. 최척은 의병으로 출전했을 때 당나라 장수들을 대접하기 위해 그들과 오래도록 술을 마신 터라, 중국말을 조금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척은 그 장수에게 자기 집안이 전몰하게 된 사실을 이야기하고, 또 자기 한 몸마저 의탁할 곳이 없어 함께 중국으로 들어가 목숨이나 부지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하였다. 당나라 장수는 최척의 말을 듣고 슬퍼하였으며, 또 최척의 뜻을 불쌍하게 여겨 말했다.

나는 오총병에 속해 있는 천총인 여유문이오. 집은 절강성 소흥부에 있으며, 재산은 비록 넉넉지 않으나 먹고살기에는 부족함이 없소. 인생이란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소중하니, 가고 아니 가고는 그대의 뜻대로 하시오. 게다가 나는 이미 집안 일에 연연하지 않고 장차 멀리 유람할 계획을 갖고 있소. 그런데 어찌 반드시 홀로 한 가지 방책만 고수하여 소심하게 그대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겠소.”

마침내 최척은 말 한 필을 얻어 타고 당나라 진중으로 들어갔다. 최척은 용모가 준수하고 지략이 심원하였으며, 활쏘기와 말타기를 잘하고 한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공은 최척을 매우 아껴 같은 막사에서 식사를 하고 잠도 같이 잤다. 얼마 뒤 총병이 병사들을 철수하여 중국으로 돌아감에, 최척은 전투와 삼군의 장부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아 국경의 관문을 통과하여 소흥부에서 살았다.

한편, 최척의 가족들은 포로가 되어 강까지 끌려 왔는데, 적병들은 최척의 부친과 장모가 늙고 병이 들어 달아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방비를 소홀히 하였다. 최척의 부친과 장모는 적들이 방심하는 순간을 틈타 몰래 갈대 숲 속으로 달아나 숨었다. 이윽고 왜적들이 물러가자, 두 사람은 갈대 숲에서 나와 이 고을 저 마을을 구걸하며 떠돌다가 마침내 연곡사로 굴러들게 되었다. 그런데 승방에서 어린아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이에 심씨가 울면서 최숙에게 말했다.

이것이 어떤 아이의 소리입니까? 꼭 우리 아이의 울음소리 같습니다.”

최숙이 문을 열어서 보니 바로 몽석이었다. 마침내 최숙은 기이한 인연에 놀라며, 아이를 품에 안고 울음을 달래었다. 그리고 몽석을 안고 나오면서 스님에게 물었다.

이 아이가 어디서 이곳으로 왔습니까?”

혜정이라는 스님이 말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시체더미 속에서 이 아이가 응애응애 울면서 기어 나왔는데, 제가 그 모습이 하도 불쌍하여 이곳으로 데리고 와 아이의 부모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아이가 살아난 것은 곧 하늘이 내려주신 복입니다. 어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최숙은 손자 아이를 심씨와 번갈아 업어가면서 집으로 돌아와 흩어졌던 노복들을 거둬들이고, 집안 일을 돌보면서 함께 의지해 살았다.

이때 옥영은 왜병인 돈우에게 붙들렸는데, 돈우는 인자한 사람으로 살생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는 본래 부처님을 섬기면서 장사를 업으로 삼고 있었으나, 배를 잘 저었기 때문에 왜장인 평행장이 뱃사공의 우두머리로 삼아 데려왔던 것이다. 돈우는 옥영의 영특한 면모를 사랑하였다. 옥영이 붙들린 채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좋은 옷을 입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면서 옥영의 마음을 달래었다. 그러나 옥영이 여자인 줄은 끝내 몰랐다. 옥영의 물에 빠져 죽으려고 두세 번 바다에 뛰어 들었으나, 사람들이 번번이 구출해서 결국 죽지 못하고 말았다.

어느 날 저녁이었다. 옥영의 꿈에 장육금불이 나타나 분명하게 말했다.

"삼가 죽지 않도록 해라. 후에 반드시 기쁜 일이 있을 것이다."

옥영의 깨어나 그 꿈을 기억해 내고는 전혀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침내 억지로라도 밥을 먹으며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

돈우의 집은 낭고사에 있었는데, 집에는 늙은 아내와 어린 딸만 있고 다른 사내는 없었다. 돈우는 옥영을 집안에서만 생활하고 다른 곳에는 일체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이에 옥영은 돈우에게 거짓말로 일렀다.

저는 단지 어린 사내로 약질에다가 병이 많습니다. 예전에 본국에 있을 때에도 남자들의 일을 감당할 수가 없어 오로지 바느질과 밥 짓는 일만을 했습니다.”

돈우는 더욱 불쌍하게 생각하여 옥영에게 사우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는 배를 타고 장사를 다닐 때마다 옥영을 데리고 가서 부엌일을 맡겼다. 그래서 옥영은 배 안에 있으면서 민절의 사이를 왕래하였다.

이때 최척은 소흥부에 살면서 여공과 의형제를 맺었다. 여공이 자신의 누이를 최척에게 시집보내려 하자, 최척이 완고하게 사양하며 말했다.

저는 온 집안이 왜적에게 함몰되어 늙으신 아버지와 허약한 아내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아직까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상복을 벗을 수 없을 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마음놓고 아내를 얻어 편안한 생활을 꾀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여공은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았다.

그 해 겨울에 여공은 병으로 인해 죽고 말았다. 최척은 또다시 갈 곳이 없어 강호를 떠돌며 두루 명승지를 유람하였다. 용문과 우혈을 살펴보고, 소상강과 동정호를 유람하였으며, 악양루와 고소대에도 올라갔다. 이렇듯 최척은 강산을 떠돌며 시를 읊조리고 구름과 물 사이를 배회하다가, 마침내 소심하게 사물에 얽매여 근심하지 않고 바람 따라 떠돌며 한 세상을 보내리라 마음먹게 되었다. 이러는 사이에 해상의 섬도사 왕은이라는 사람이 아미산 아래에 살고 있는데, 금련단을 달여 먹고 대낮에 하늘을 날수 있는 재주를 가졌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최척은 장차 촉 땅으로 가 그에게 선술을 배우려고 하였다.

때마침 주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호를 학천이라고 했으며, 집이 용금문 밖에 있었다. 그는 경전과 사서에 두루 통했으나 공명을 달갑게 여기지 아니하고 물건 매매를 생업으로 삼았으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고 의기를 숭상하였다. 최척과는 예전부터 절친하게 지내는 사이였는데, 최척이 촉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술을 가지고 왔다. 주우는 술잔을 들고 최척의 자를 부르며 말했다.

백승아! 백승아!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군들 오래 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고금천하를 오래도록 보아 왔지만 죽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었는가? 남은 인생이 얼마나 된다고 음식을 물리치고 배고픔을 참는 등 스스로를 괴롭히면서 산에 사는 귀신과 이웃이 되려고 하는가? 자네는 모름지기 나에게 와서 나와 함께 사는 것이 좋겠네. 일엽편주에 몸을 싣고 오로지 마음이 내키는 대로 다니며, 아침저녁으로 오 땅과 초 땅을 오가며 비단과 차를 팔고 다니세. 이렇게 강호를 유랑하며 남은 인생을 즐기는 것이 바로 달인의 경지요,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지상의 신선이 하늘에서 노니는 것을 배웠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최척은 주우의 말을 듣고 확연하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래서 주우와 함께 가게 되었는데, 이때가 경자년 늦봄이었다. 최척과 주우는 배를 타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차를 팔다가 마침내 안남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일본인 상선 10여 척도 강 어구에 정박하여 10여 일을 함께 머물게 되었다.

 

날짜는 어느덧 4월 보름이 되어 있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물은 비단결처럼 빛났으며, 바람이 불지 않아 물결 또한 잔잔하였다. 이 날 밤이 장차 깊어 가면서 밝은 달이 강에 비추고 옅은 안개가 물위에 어리었으며, 뱃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빠지고 물새만이 간간이 울고 있었다. 이때 문득 일본인 배 안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 왔는데, 그 소리가 매우 구슬펐다. 최척은 홀로 선창에 기대어 있다가 이 소리를 듣고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즉시 행장에서 피리를 꺼내 몇 곡을 불어서 가슴속에 맺힌 회한을 풀었다. 때마침 바다와 하늘은 고요하고 구름과 안개가 걷히니, 애절한 가락과 그윽한 흐느낌이 피리 소리에 뒤섞이어 맑게 퍼져나갔다. 이에 수많은 뱃사람들이 놀라 잠에서 깨어났으며, 그들은 처연하게 앉아 피리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격분해서 머리가 곧추 선 사람도 피리 소리에 분을 가라앉힐 정도였다.

잠시 후에 일본인 배 안에서 조선말로 칠언절구를 읊었다.

 

왕자진의 피리 소리에 달마저 떨어지려 하는데,

바다처럼 푸른 하늘엔 이슬만 서늘하구나.

 

시를 읊는 소리는 처절하여 마치 원망하는 듯, 호소하는 듯 하였다. 시를 다 읊더니, 그 사람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척은 그 시를 듣고 크게 놀라서 피리를 땅에 떨어뜨린 것도 깨닫지 못한 채,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 이를 보고 학천이 말했다.

어디 안 좋은 곳이라도 있는가?”

최척은 대답을 하고 싶었으나 목에 메이고 눈물이 떨어져 말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최척은 기운을 차려 말했다.

조금 전에 저 배 안에서 들려왔던 시구는 바로 내 아내가 손수 지은 것이라네. 다른 사람은 평생 저 시를 들어도 절대 알아내지 못할 것일세. 게다가 시를 읊는 소리마저 내 아내의 목소리와 너무 비슷해 절로 마음이 슬퍼진 것이라네. 어떻게 내 아내가 여기까지 와서 저 배 안에 있을 수 있겠는가?”

이어서 온 가족이 포로로 잡혀간 일을 말하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 가운데 비탄에 젖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그 가운데는 두홍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젊고 용맹한 장정이었다. 그는 최척의 말을 듣더니, 얼굴에 의기를 띠고 주먹으로 노를 치면서 분연히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가서 알아보고 오겠소.”

학천이 저지하며 말했다.

깊은 밤에 시끄럽게 굴면 많은 사람들이 동요할까 두렵네. 내일 아침에 조용히 물어 보아도 늦지 않을 것일세.”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말했다.

그럽시다.”

최척은 앉은 채로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동방이 밝아오자, 즉시 강둑을 내려가 일본인 배에 이르러 조선말로 물었다.

어젯밤에 시조를 읊던 사람은 조선 사람 아닙니까? 나도 조선 사람이기 때문에 한 번 만나 보았으면 합니다. 멀리 다른 나라를 떠도는 사람이 비슷하게 생긴 고국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찌 기쁘기만 한 일이겠습니까?”

옥영도 어젯밤에 들려왔던 피리 소리가 조선의 곡조인데다, 평소에 익히 들었던 것과 너무나 흡사하였다. 그래서 남편 생각에 감회가 일어 저절로 시를 읊게 되었던 것이다. 옥영은 자기를 찾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는 황망하게 뛰어나와 최척을 보았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바라보고는 놀라서 소리를 지르면 끌어안고 백사장을 뒹굴었다. 목에 메이고 기가 막혀 마음을 안정할 수가 없었으며, 말도 할 수 없었다. 눈에서는 눈물이 다하자 피가 흘러내려 서로를 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두 나라의 뱃사람들이 저자 거리처럼 모여들어 구경하였는데, 처음에는 다만 친척이나 잘 아는 친구인 줄로만 알았다. 뒤에 그들이 부부 사이라는 것을 알고 사람마다 돌아보며 소리쳐 말했다.

이상하고 기이한 일이로다! 이것은 하늘의 뜻이요, 사람이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로다. 이런 일은 옛날에도 들어보지 못하였다.”

최척은 옥영에게 그간의 소식을 물으며 말했다.

산 속에서 붙들리어 강가로 끌려갔다는데, 그때 아버님과 장모님은 어떻게 되었소?”

옥영이 말했다.

날이 어두워진 뒤에 배에 오른 데다 정신이 없어 서로 잃어버리게 되었으니, 제가 두 분의 안위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두 사람이 손을 붙들고 통곡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슬퍼하며 눈물을 닦지 않는 이가 없었다.

학천은 돈우를 만나 백금 세 덩이를 주고 옥영을 사서 데려 오려고 하였다. 그러자 돈우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내가 이 사람을 얻은 지 이제 4년 되었는데, 그의 단정하고 고운 마음씨를 사랑하여 친자식처럼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침식을 함께 하는 등 잠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으나, 지금까지 아낙네인 것을 몰랐습니다. 오늘 이런 일을 직접 겪고 보니, 이는 천지신명도 오히려 감동할 일입니다. 내가 비록 어리석고 무디기는 하지만 진실로 목석은 아닙니다. 그런데 차마 어떻게 그를 팔아서 먹고 살 수 있겠습니까?”

돈우는 즉시 주머니 속에서 은자 10냥을 꺼내어 전별금으로 주면서 말했다.

“4년을 함께 살다가 하루아침에 이별하게 되니, 슬픈 마음에 가슴이 저리기만 하오, 온갖 고생 끝에 살아 남아 다시 배우자를 만나게 된 것은 실로 기이한 일이며, 이 세상에 없었던 일일 것이오. 내가 그대를 막는다면 하늘이 반드시 나를 미워할 것이오. 사우여! 사우여! 잘 가시게! 잘 가시게!”

옥영이 손을 들어 감사를 드리며 말했다.

일찍이 주인 영감님께서 보호해 주신 덕분에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오다가 뜻밖에 낭군을 만나게 되었으니, 제가 받은 은혜가 이미 끝없이 많기만 합니다. 게다가 이렇듯이 기뻐하며 전별금까지 주시니 진실로 그 은혜를 잊지 않겠으며, 백 번 절하여 감사 드립니다.”

최척이 옥영과 함께 본 배로 돌아오자 이웃 배에서는 이들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연일 끊이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들은 금은과 비단을 주기까지 했다. 학천은 집으로 돌아와 별도도 방 하나를 깨끗이 청소하고 최척과 옥영을 그곳에 살게 하였다.

최척은 이미 아내를 만났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그러나 머나먼 이국 땅에 의탁해 살고 있는 터라, 사방을 둘러보아도 친척 하나 없었다. 그래서 항상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생각에 눈물이 마른 적이 없었으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상심에 쌓여 있었다. 최척은 머나먼 이국 땅에서 더 이상 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게 해달라고 묵묵히 기도하였다.

 

그러나 세월은 끊임없이 흘러서 최척은 또 아들 하나를 낳았다. 아이를 낳기 전에 장육금불이 또 꿈에 나타나서 말했다.

이번에 낳는 아들도 등에 붉은 사마귀가 있을 것이로다.”

최척 부부는 부처님께 감사 드리고, 몽석이 다시 태어난 것으로 여겨 이름을 몽선이라고 지었다. 몽선이 이윽고 장성하여 어진 아내를 구하고자 하였다. 이웃에 진가의 딸이 살고 있었는데, 이름은 홍도였다. 홍도가 젖을 떼기도 전에 아버지 위경은 유총병을 따라 조선에 출전했다가 돌아오지 않았으며, 다 자라기도 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어 홍도는 이모의 집에서 길러졌다. 홍도는 늘 아버지가 타국에서 죽은 것을 슬퍼하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죽은 나라에 한 번 가서 넋을 불러 놓고 통곡한 뒤, 시신을 모시고 돌아와 장례를 지내는 것이 홍도의 소원이었다. 홍도는 이렇듯 원한을 뼈와 가슴에 새기고 있었으나, 여자의 몸이라 뜻을 품고도 조선에 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몽선이 혼처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기도 전에 이모에게 중매를 부탁하며 말했다.

제 평생의 소원은 최씨의 아내가 되어 한 번 조선에 가서 마음속에 맺힌 원한을 푸는 것입니다.”

홍도의 이모는 본래부터 홍도의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최척을 만나 홍도가 품은 생각을 대략 이야기하고, 이어서 혼인을 요청하였다. 이에 최척 부부는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어린 여자아이도 이러한 뜻을 두었는데, 우린들 어찌 이러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마침내 최척은 홍도를 며느리로 맞이하였다.

다음 해 무오년에 오랑캐 추장이 요양으로 쳐들어 와 연달아 몇 개의 진지를 함락하고, 수많은 장졸들을 죽였다. 천자는 크게 화가 나서 온 나라의 모든 병사를 동원하여 이를 토벌케 하였다. 소주 사람인 오세영이 교유격의 부총으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그는 예전에 여유문에게 들어서 최척이 재주가 있고 용맹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척을 서기로 삼아 데려가려고 하였다. 최척이 거절을 할 수 없어 행장을 꾸려 가려고 할 때, 옥영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작별하여 말했다.

저는 타고난 운수가 좋지 않아 일찍이 난리를 만나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였습니다. 하느님의 도움으로 다행이 낭군을 만나, 끊어진 거문고 줄을 다시 잇고 나뉜 거울을 다시 둥글게 하듯이, 이미 끊어진 인연을 다시 맺었습니다. 게다가 늙어서 의탁할 아들까지 얻어 함께 24년 동안을 즐겁게 살아왔습니다. 지난 일을 돌아보건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저는 항상 이 몸이 먼저 갑자기 죽어 낭군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에 늙어 가는 것을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듯 이별하게 되었으니, 이제 수 만리나 떨어진 요양으로 가시면 다시 살아서 돌아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원컨대, 불미스러운 제가 이별하는 자리에서 자결하여 한편으로는 낭군께서 아내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끊고, 다른 한편으로는 밤낮으로 겪게 될 제 근심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아아! 이제 낭군을 영영 이별하게 되었으니, 낭군께서는 천금같이 몸을 스스로 잘 보존하시기를 간절히 바라옵니다.”

옥영은 말을 마치고 칼을 뽑아서 목을 찌르려고 하였다. 최척이 칼을 빼앗으며 달래어 말했다.

하찮은 오랑캐 추장이 감히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기에 제왕의 군대가 깨끗이 쓸어버리기 위해 가는 것이니, 형세는 계란을 깨는 것과 같소. 멀리 이역에 종군한다고 해서 어찌 반드시 다 죽겠소? 삼가 근심하거나 고민하지 마시오. 내가 공을 이루고 돌아오면 중당에 술상을 차려 놓고 맞이하여 축하나 해주시오. 하물며 몽선이 건장하여 의지하기에 부족함이 없으니 되도록 많이 먹고, 먼길을 가는 사람에게 걱정을 끼치지 마시오.”

마침내 최척을 포함한 명나라 군사는 길을 떠나 요양에 이르렀으며, 여기에서 오랑캐 땅으로 수백 리 걸어 들어가 조선 군사와 우미새에 진을 쳤다. 그러나 주장이 적을 가볍게 여기고 싸우다가 전군이 크게 패하였다. 오랑캐들은 명나라 병사는 부류를 가지지 않고 다 죽이되, 조선 병사는 유혹하거나 위협하기만 하고 하나도 죽이지 않았다. 이에 교유격이 패졸 10여명을 거느리고 조선 진영으로 들어가 조선옷을 구걸하자, 조선의 원수인 강홍립은 남은 옷을 지급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그런데 종사관 이민환이 이러한 사실이 오랑캐에게 발각될까 두려워 다시 옷을 뺏고 중국 사람들을 붙잡아 적진에 보내버렸다. 최척은 본래 조선 사람이었기 때문에 분주하고 어지러운 순간을 틈타 명나라 사람을 세워놓은 줄에서 홀로 빠져 나와 죽음을 면하였다. 강홍립이 투항하자 최척은 조선의 장졸들과 함께 오랑캐 추장의 뜰에 감금되었다.

이때 몽석도 남원에서 무예를 익히다가 출전하여 원수의 진중에 있었다. 오랑캐가 항복한 군졸들을 나누어 놓을 때 최척은 몽석과 같은 곳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서 부자가 서로 만나게 되었으나, 최척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다. 몽석은 최척이 말을 더듬거리는 것을 보고, 조선말을 할 줄 아는 명나라 병사가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서 조선 사람 행세를 한다고 의심했다. 그래서 최척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따져 물었다. 최척도 오랑캐가 실상을 조사하는 것으로 의심해 말을 이리 돌리며 전라도에 있었다고 하기도 하고, 충청도에 산다고 말하기도 했다. 몽석은 마음속으로 더욱 이상하게 생각했으나 그 실상을 알 수가 없었다.

이윽고 몇 개월이 지난 후에 최척과 몽석은 정의가 매우 두터워지고 서로 동병상련하는 처지인지라, 조금도 시기하거나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최척은 마침내 자기가 평생 겪어왔던 내력을 조금도 숨김없이 사실대로 털어놓게 되었다. 몽석은 최척의 말을 듣고 놀라서 낯빛이 변하더니, 슬픈 듯 기쁜 듯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갑자기 물었다.

잃어버린 아이는 나이가 몇 살이며, 신체의 모양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최척이 말했다.

갑오년 10월에 아이를 낳았으며, 정유년 8월에 잃어버렸다네. 그리고 등위에 붉은 사마귀가 있는데, 마치 어린아이의 손바닥 같다네.”

몽석이 말을 못하고 놀라 쓰러졌다가 윗통을 벗어 등을 보이며 말했다.

제가 바로 그 아이입니다.”

최척은 비로소 몽석이 자기 아들임을 확인한 후 부친과 장모님의 생사 여부를 물었으며,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는 희비가 교체하여 서로 붙들고 통곡하였다. 집주인인 늙은 오랑캐가 자주 와서 이 광경을 보더니, 그들의 말을 알아들은 듯이 가엾은 표정을 지었다. 하루는 다른 오랑캐들이 모두 밖으로 나간 사이에 늙은 오랑캐가 몰래 와서 함께 자리에 앉아 조선말로 물었다.

당신들이 서로 붙들고 통곡을 했는데, 이는 반드시 가슴아픈 사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오. 대체 그것이 무슨 일이요?”

최척과 몽석은 그가 꾀어서 비밀을 알아내려는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오랑캐가 말했다.

당신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본래 삭주의 토병이었는데, 목사의 학정을 견디지 못해 가족을 데리고 오랑캐 땅으로 들어왔소. 여기 온 지 이미 20년이나 되었지요. 오랑캐 사람들은 성격이 진솔하며 가혹하게 수탈하는 일도 없소. 인생은 아침 이슬과 같을 따름인데, 어찌 고초를 겪어야만 하는 고향에 얽매여 두려워 떨면서 살아야겠소? 그래서 난 가족을 이끌고 이 나라로 왔던 것이오. 오랑캐 추장은 나에게 병사 8천 명을 거느리고 조선 병사들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감독하게 하였소. 아까 당신들 말을 들어보니 대단히 기이한 일인 듯 했소. 내가 비록 죄를 얻더라도 어떻게 차마 당신들을 보내지 아니하겠소?”

마침내 늙은 오랑캐는 식량을 마련하고 샛길을 가르쳐 주면서 최척과 몽석을 풀어 주었다. 이에 최척은 아들을 이끌고 살아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니, 시급히 부친을 뵙고 싶은 마음에 서둘러 남쪽으로 내려왔다. 도중에 등창이 났으나 치료할 경황이 없었다. 은진에 이르자 종기가 더욱 심해져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여관으로 들어갔으나, 최척은 호흡이 실낱처럼 가늘어져 거의 죽을 듯이 헐떡거렸다. 몽석은 초조한 마음에 이리저리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침쟁이와 약을 찾아 다녔는데, 때마침 신분을 숨기고 도망 다니던 중국 사람이 호남에서 영남으로 가다가 최척의 증세를 보고 놀라서 말했다.

위태롭구나! 위태롭구나! 만약 오늘을 넘긴다면 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중국사람은 즉시 주머니에서 조그만 침을 꺼내어 등창의 입구를 터뜨렸다. 그리하여 최척은 다음날 이내 낫게 되었다.

며칠 뒤에 최척이 지팡이를 짚고 고향 마을로 돌아오자, 온 집안 사람이 재생한 사람을 보는 것처럼 놀라며 슬퍼하였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서로 손을 잡고 목을 끌어안으며 목이 쉬도록 통곡하였으며, 모두들 취한 듯 꿈인 듯 사실이 아닌 것처럼 여겼다. 심씨는 딸을 잃어버린 뒤부터 바보처럼 본심을 잃은 채 오로지 몽석이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는데, 근래 북쪽으로 원정을 갔던 군사들이 모두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는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몇 개월 동안 앓아 누워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던 심씨는, 몽석이 자기 아버지와 함께 오는 것을 보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허둥대었다. 게다가 옥영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을 듣고 더욱 슬프고도 기쁜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였다.

몽석은 아버지를 살려준 중국 사람의 은혜에 감격하여 장차 후하게 보답하려고 그를 데리고 왔었다. 최척은 가족과의 감격스러운 해후를 마치고 나서 중국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이 중국 사람이라면 집은 어디에 있으며, 성명은 무엇입니까?”

중국 사람이 대답했다.

내 성은 진이오. 이름은 위경이며, 집은 항주 용금문 밖에 있습니다. 만력 년간에 조선으로 원정을 온 뒤 유제독 휘하에 있었습니다. 유제독은 전라도 순천에 진을 쳤는데, 하루는 제가 적세를 염탐하다가 주장의 뜻을 어기게 되었습니다. 주장이 장차 군법으로 다스리려고 하기에 밤에 몰래 달아나서 여기에 머물게 된 것입니다.”

최척이 이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며 말했다.

당신 집안에 부모와 처자가 있습니까?”

중국 사람이 말했다.

집안에 아내와 딸아이 하나만 있었는데, 딸아이는 내가 떠나올 때 낳은 지 채 몇 개월도 지나지 않았었습니다.”

최척이 또 물었다.

딸아이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중국사람이 말했다.

아이를 낳는 날, 마침 이웃 사람이 복숭아를 보내 왔기에 이름을 홍도라고 지었습니다.”

최척이 갑자기 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괴이하도다! 괴이하도다! 내가 항주에서 당신의 집과 이웃해서 살았었습니다. 당신의 처는 신해년 9월에 병으로 죽고 홍도만 혼자 남게 되었는데, 홍도는 이모부인 오봉림의 집에서 길러져 내가 둘째 며느리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오늘 여기에서 당신을 만나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이한 일입니다.”

위경이 이 말을 듣더니 그의 가족들을 본 것처럼 기뻐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픔에 젖어 한바탕 통곡을 하고 말했다.

나는 영남 대구에서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에 의탁해 침술로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제 당신과 이미 사돈간이 되었으니 내가 이곳으로 옮겨와 서로 의지해 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몽석이 말했다.

공께서는 저의 아버지를 살려주신 은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절친한 인척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제 어머님과 동생이 공의 따님께 의탁해 이미 한 가족을 이루었으니, 여기서 함께 사는 일을 다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리고 즉시 위경으로 하여금 이사를 해서 바로 이웃에 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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